사존(師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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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말엽의 제공활불의 화신으로 18대 궁장조사(弓長祖師)이시다. 백양2조 이시고 도반(道盤)을 맡으셨다. 청광서 13년 (1887년) 7월 19일에 산동 제령성 남향썅유점(南鄕双劉店)에서 탄생하셨는데 이날 황하 이북의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비추었고, 흐린 황하의 물이 갑자기 강 밑바닥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성은 장(張) 씨이고 이름은 규생(奎生) 또는 괴생(魁生)이고 자는 광벽(光壁)이다. 아버지는 옥새(玉璽)이고 어머니는 교(喬)씨로 집안 살림이 넉넉하였다. 22세 때 제령을 떠나 상해로 가서 군관생활을 하였는데 부친이 별세하자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업을 관리하던 중 27세 때 공맹일관지도(孔孟一貫之道)를 전하는 경전인(耿前人)을 만나 구도한 후 곧장 전도에 동분서주 하였다.
17대 로중일(路中一)조사를 뵙고 로조와 함께 곳곳으로 다니며 도를 폈다. 로조의 수 천 명의 제자 중 수제자가 8명 이었는데 그 가운데 사존이 가장 어렸다. 하루는 로조께서 시험을 했는데 제자들을 다 모아놓고 “나를 따라 수도하느라 먹을 것도 못 먹고 고생하였으니 고기도 요리하여 잔치를 열어 실컷 배부르게 먹어라.” 하였다. 오로지 사존 혼자만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 그 자리를 피하여 그 시험에 통과 하였다.
성모님의 기우객가뇌수한창공적막(寄寓客家牢守寒窓空寂寞)이란 시에 원피미도퇴환연경반소요(遠避迷途退還蓮逕返逍遙)로 화답하여 만난 18대 자계조사와 함께 1930년 공동책임으로 말후일착 삼조보도 수원대사를 완수하라는 천명을 받아 18대 조사로 승계하였다. 성모님과 함께 제남으로 건너가 개황에 성공하고, 다음으로 천진을 개황하여 천진도덕단을 설단하였으며, 순양로(純陽爐) ․ 자양로(紫陽爐) 등을 설립하여 인재를 교육하므로서 도무가 발전하였다. 다음으로 상해를 개황하고 북경, 남경, 대만, 한국 등지로 확대 발전 되었다.
1939년 예식을 행하는 방식이 통일되지 않고 집례의 구령에 사용되는 말이 너무 어려워 잠정불규를 제정하여 합동인(合同印)의 포법을 통일토록하고 원래 집전에서 사용하던 구령 중 승(升)과 부(俯)를 작읍(作揖), 궤(跪)로 고수(叩首) 및 기(起)로 고치고 여러 종류의 행위 예절도 규정하였다.
1947년 8월 중추에 사천성도의 왕도심 화원 별장에서 귀공 하셨는데 정계원로인 거정의 협조아래 특별기편으로 상해 홍교비행장까지 운구한 다음 다시 호항철도의 기차를 이용하여 항주 서호 호반의 영은사 부근에 안장되었다. 제공활불은 영은사에 주재할 때 영구비래(靈柩飛來)라는 편액을 써 놓았는데 사존의 영구(靈柩)를 비행기로 운구한 점은 의미가 깊다.
사존의 도호는 천연고불(天然古佛)이며 은사대인 ․ 사존대인 ․ 활불사존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