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당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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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기천(氣天)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천(理天)에 갈 때를 기다리는 선불님들이다. 대선(大仙) : 기천계(氣天界)에 있는 신선[수도한 도사(道士), 시은포덕(施恩布德)한 현사(賢士), 덕이 있어 백성을 보호한 임금, 충신(忠臣), 열사(烈士), 열녀(烈女), 효자효녀(孝子孝女)]의 영혼이다.


    팔선(八仙) : 漢鍾離 曺國舅 李鐵拐 張果老 呂洞濱 藍采和 何仙姑 韓湘子

                  한종리 조국구 이철괴 장과로 여동빈 람채화 하선고 한상자


    ※천단에 모셔진 팔선 가운데 여동빈 신선인 순양여조는 20세에 노산에 갔다가 화룡(火龍)을 만나 화룡이 쏘는 방사선을 손으로 잡은 즉 검(劍)이 되었는데 이 칼의 마력에 의해 자유자재로 공중에 응신 할 수 있었다 한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각위법률주는 천도(天道)를 총호위하며 삼계(三界)에 관한 율법(律法)을 맡아서 처리하는 선불님으로 문무양반(文武兩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분들은 모두 미륵부처님의 삼조보도 수원대사를 도와 천도를 보호한다. 또 천도를 널리 펴서 몽매한 인심을 깨우치고 모든 마군이를 굴복시켜 천도를 행함에 장애가 되는 세력을 화하여 돕는 힘이 되게 한다.


    문법률주는 선악을 막론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자비로서 구원을 해주고 또 잠자는 원불자를 깨워 천도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무법률주는 마군에게 벌을 주어 교화시키고 수도에 장애되는 것을 물리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문무 양 법률주는 천도를 호위하여 천하 중생들로 하여금 상천노모님의 은혜와 사존 ․ 사모의 덕을 입게 하고 또한 천도(天道)와 천명(天命)이 지구상에서 끊이지 않도록 사바세계를 교화시킨다.


    ▶ 문법률주 : 남해고불(南海古佛) 

                         순양여조(純陽呂祖) 

                         문창제군(文昌帝君)                 

                         장생대제(長生大帝)


    ▶ 무법률주 : 관성제군(關聖帝君) 

                         장대제(張大帝) 

                         원장대인(院長大人) 

                         동악대제(東嶽大帝)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고시원장은 삼천주고원장대인(三天主考院長大人)이시다. 사존의 쌍둥이 아들 중 형인 무전사형(茂田師兄) 또는 진전장군(鎭殿將軍)으로서 천도의 수원대사를 돕다가 귀공하신 후 노모님으로부터 ‘삼천주고 원장대인(三天主考院長大人)’으로 봉해졌다. 수도인의 진위(眞僞)와 진실성 여부를 조사하고 시험하는 책임을 담당하신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관성제군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용장인 관우(關羽 : 162-219년)이다. 성은 관(關) 씨이고 자(字)는 운장(雲長)으로 음력 6월 24일 중국 산서성 해현에서 태어났다. 관성제군은 천단 가장 오른쪽의 보좌불로 상례를 담당하신 무법률주의 한분이며 불규를 지키고 불가의 분열을 지켜주신다. 관성제군께서 무법률주가 되신 원인이 있다. 삼국시대 때 유비 ․ 관우 ․ 장비가 의형제를 맺어 도원결의를 했다.


    제공활불은 유비의 화신으로서 유비와 제공활불은 하나의 영(靈)이다. 18대 궁장조사인 사존대인은 제공활불 화신이시니 곧 유비의 영(靈)이다. 그래서 관성제군이 백양운인 이번에 또 궁장조사를 도와 도(道) 중의 법을 지키게 되었고, 무장이기 때문에 무법률주가 되신 것이다. 


    살아생전에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다 겸비하셨고, 국고의 창고를 지키는 한 관리로 한 생을 살 때 왕과 신하들은 향락을 누리는데 반해 굶주리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쌀 창고를 개방하여 도운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왕의 분노를 사게 되어 잡아들이도록 하자 쌀 창고 안에 현재의 무서운 모습으로 앉아 계시니 왕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관성제군은 맑고 높은 뜻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 불굴의 용기, 청렴결백, 충의절의(忠義節義) 등 마(魔)를 물리치는데 위령현혁(威靈顯赫)하며 의리가 높고 커서 하늘과 짝할 수 있을 만하여 관성제군하면 대의참천(大義參天)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불호는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이시고 백양기인 지금 이때는 18대 옥황상제이시다,


    사존대인께서는 “재계를 지키지 않고도 오직 호연정기(浩然正氣)에 의해 성도했다.” 라고 훈시할 정도로 그의 성품은 공평무사했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자씨보살로 불리는 미륵부처님과 함께 자비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 또는 관세음으로 불리고 있다. 고통에 빠져 있는 중생들이 구원의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찾으면 여러 모습으로 나투어 어디든지 화현하여 구제해 주시는 보살이시다.


    그래서 여러 명호로 호칭하고 있는데, 세상의 고통 하는 중생들의 소리를 듣고 구제하고자 하는 대보살심의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 힘없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자기중심적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원만하게 만족시켜 주며 주어지는 일들을 처리해 가는 나무천수보살마하살 ․ 남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는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 큰 수레바퀴처럼 남의 마음을 넉넉하고 즐겁게 해주는 나무대륜보살마하살 ․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는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 어느 사람이든 바른 길로 나아가게 인도해 주는 나무정취보살마하살 ․ 언제나 싱글벙글 즐겁게 해주는 나무만월보살마하살 ․ 달이 뜨면 물에 다 비치듯이 물처럼 맑고 청정하게 마음을 비우는 곳이면 다 비춰주는 나무수월보살마하살 ․ 약병을 들고 중생들의 마음병을 치료하는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 ․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화내고, 칭찬하고 또는 평심의 얼굴로 자비희사를 겸해서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울고, 아플 때 같이 아파하며 중생을 제도하는 11면보살마하살 ․ 전체를 한데 모아 붙여진 나무제제보살마하살 등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구고구난(救苦救難)의 대비보살로 알려져 있다. 


    묘선공주로 태어나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성도하여 남해 보타락가산의 연대에 올랐으며 불호는 대자대비 구고구난 광대영감 관세음보살(大慈大悲 救苦救難 廣大靈感 觀世音菩薩)이고 성호는 남해고불(南海古佛)이시다. 또한 백양기 당래교주이신 미륵불의 좌보처로서 앞으로 다가올 용화세계의 대수원을 돕고 계신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도법(道法)을 중생에게 가르쳐서 깨달아 알게 해 주시는 부처님이시다. 사존대인 따님으로 원래는 구름 속을 노니는 여신선으로서 기천대선인 운유고랑(雲遊姑娘)이시다. 삼조보도를 도운 공(功)이 있어 상천에서 교화보살에 봉했다. 통칭하여 교화를 맡으신 사존의 따님이라는 뜻으로 교화사저(敎化師姐) 라고도 한다. 민간에 전염병이 유행하였을 때 곳곳에 현화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또한 성모님의 성체(聖體)도 치료해 드렸는데, 성모님을 위하여 친히 스스로 의료교화를 베푸신 제일위대선(第一位大仙) 이어서 천도교화(天道敎化)의 상징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교화하며 시시때때로 성전(成全)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큰마음을 발하게 하여 대도의 문을 열게 한다. 동시에 사바세계를 정토세계로 이루어 가기 위해 교화에 힘쓴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국조단군은 한민족의 시조이신 단군할아버지이시다. 단군(檀君)은 단검(檀儉)이라고도 부르며 이름은 한배검(韓培儉)이시다. 국조단군은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과 웅녀(熊女)의 사이에서 ○나신 분으로서 단군임검(檀君任儉)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 또는 환검(桓儉)이라고 한다. 단군(檀君)이란 박달임검(朴達任儉)을 뜻하고 임검(任儉)이란 군장(君長)이라는 뜻이다. 곧 환인(桓因)님의 큰 손자이신 신인(神人)의 이름[桓儉神人]이며 만물을 맡아 무위(無爲)의 조화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환(桓)이란 태양을 상징함이며 ‘밝다’라는 뜻이다. 검(儉)이란 감히 방종하고 사치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환검(桓儉 : 단군임금)이 신(神)으로서 사람이 되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내리니 나라 사람들이 높이여 임검(任儉)으로 삼고 국호를 단(檀)이라 하였으니 이분이 바로 단군이시다. 원년(元年)은 무진(戊辰)이니 곧 당 요(唐堯) 25년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천제(天帝) 환인(桓因)으로부터 수십 대를 전하여 환인(桓因)님의 아들 환웅(桓雄) 때에 이르러 막고야국(藐姑射國 :신시환국)이 비롯되었고 그 아들 환검신인(桓儉神人 : 단군임검)이 나라 이름을 고쳐 조선(朝鮮)이라 하닌 임검이라는 호칭과 조선이라는 국호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라도 하였다.


    국조단군은 사람들에게 인륜의 도와 의식과 궁실과 머리를 땋고 관을 쓰는 법을 가르쳤으며 비서갑(匪西甲) 하북(河北)의 여자와 혼인하여 네 아들(부루 ․ 부우 ․ 부소 ․ 부여)을 낳았다. 그리고 팽우(彭虞)에게 산천(山川)을 다스리게 했고 신지(神誌)에게 서계(書契)를 관장케 하고 그후 숙신(肅愼)에게 정벌(征伐)을 맡겼다. 그후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고쳐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명을 주관하고[主命], 곡식을 주관하며[主穀], 병사를 주관하고[主兵], 형벌을 주관하며[主刑], 병을 다스리고[主病], 선악을 주관하며[主善惡], 고을을 다스리는[主忽] 관리를 두었다.


    이렇게 박달임검(朴達任儉 : 단군)께서 지극한 덕으로 천하를 다스린 지 3천여 년에 홍수를 만나 큰 파도는 하늘을 넘치고 요동과 만주의 벌판을 삼켜버려 패수(浿水)가 넘치고 평양이 잠겼으므로 이에 네 분의 아들을 보내어 땅의 마땅한 곳을 두루 살피게 하셨다. 이윽고 아사달(阿斯達) 아래 당장(唐莊)의 들에 옮겨 살았으니 지금의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 아래의 장장평(莊莊坪)이 곧 그 땅이다.


    이에 움막을 아사달 밑에 짓고 부루(夫婁)로 하여금 평양에 백성을 다 살리게 하였으며 다시 물과 흙을 다스려 몇 해 후에는 완전하게 되니 당장(唐莊)의 백성들에는 살기 좋은 낙원이 되었다.


    우리나라 생일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단기 년도는 서기에 2333년을 합하면 나온다. 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꿇어앉는 동작.


    건도(乾道) : 왼발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어 놓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덮어 왼쪽 무릎에 올리고, 오른쪽 무릎은 명고방석에 꿇은 후 허리를 곧게 펴며 왼쪽 무릎을 오른쪽 무릎 옆으로 가져가 붙인다. 


    곤도(坤道) : 왼발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면서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명고방석을 짚으며 오른쪽 무릎을 명고방석에 꿇은 다음 허리를 곧게 펴며 왼쪽 무릎을 오른쪽 무릎 옆으로 가져가 붙인다.


    ※ 궤할 때 건곤 모두 양발을 가지런히 붙여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놓는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일어나는 것인데, 건도와 곤도의 동작이 약간 다르다.


    건도(乾道) : 왼쪽 다리를 명고 옆으로 가게 하여 무릎을 세우고, 오른손은 아래에 왼손을 위로 가게 포개어 왼쪽 무릎에 올려서 일어난 후 왼발을 뒤로 당겨 오른발과 나란히 한다.


    곤도(坤道) : 왼쪽 다리를 명고 옆으로 가게 하여 무릎을 세우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명고방석을 짚고 일어난 후 왼발을 뒤로 당겨 오른발과 나란히 한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동방 후 17대 조사인 김공조사는 미륵고불 화신이시고 백양초조(白陽初祖)이시다. 이름은 로중일(路中一)이고 호는 통리자(通理子)이며 산동 제령(山東濟寧) 사람으로 자칭 무선치인(無線痴人)이라 하셨다. 청 도광(道光) 29년(1849년) 4월 24일에 태어나 중화민국 14년(1925년) 2월 2일 향년 76세로 귀공 하셨다. 어린 시절에 양친을 모두 잃고 여동생 하나와 서로 의지하며 제령성 오리영의 두 칸짜리 낡은 집에서 지냈을 정도로 생활이 매우 고생스러웠다.


    청나라 동치(同治) 9년(1870년)에 정부에서 병사를 모집하며 가족의 생계비를 주었으므로 22세 때 직예 병참에 입대하였다가 청 광서 21년 2월 초순 경 3일 동안 밤에 계속 꿈속에서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속히 산동 청주로 가서 청허노조(淸虛老祖)를 찾아 구도하여라. 속세에 탐련해서는 안 된다.” 라는 노모(老中)의 계시를 받고 군대를 떠나 그동안 모아둔 은 백량을 챙겨 남쪽으로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서도 꿈속에 계속 신불이 갈 길을 인도해 주었다.


    어느 날 “내일 ○○산으로 명사를 찾아가 구도를 하라.”는 계시를 받았는데 그날 밤 16대 조사 유조(劉祖)도 꿈에 “내일 아침 큰 현인이 올라 올 것이니 산 앞에 나아가 맞이하라.”는 신불의 계시를 받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산 앞에 나아가서 사방을 둘러보며 기다렸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이 큰 모자에 남루한 옷차림으로 봇짐을 메고 다가오고 있었다. 유조는 보기에 별로 특이한 점이 없었으므로 “바로 이 사람인가?” 하고 의심하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와 “이곳에 구도하는 곳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당신이 구도하려고 하오? 구도하려면 은 백량을 내놔야 하오.” 하고 유조가 대답하자 서슴없이 “백량이라면 백량을 드리지요. 저는 꼭 구도를 하겠습니다.” 하였다.


    유조는 이 사람이 진정으로 구도를 하고자함을 알고 산위에 있는 불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당도하자마자 로조는 봇짐을 풀고 서슴없이 은 백량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바치었다. 유조는 속으로 ‘방금 내가 백량을 달라고 한 것은 장난삼아 무심코 한 말인데 이 사람은 진담으로 알고 이러는구나!’ 생각하고는 즉시 향초를 준비하여 현관 일규를 지점하였다. 구도를 끝내고 유조는 “도를 당신에게 이미 전하였으니 돌아가시오.” 하자 “제가 오랫동안 군대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은 백량을 모두 선생님에게 바쳤습니다. 저는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선생님을 따라 수도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유조는 은 백량을 받았기에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어 “그대는 무엇을 할 줄 아오?” 하고 물었다. “저는 글을 몰라 궂은 일 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러면 나무를 해오고 물 긷는 일을 하시게.” 하여 힘든 일을 해가며 수도하기 시작하였다. 학식이 있는 제자들은 법당에서 성리심법을 연구하고 참선을 하는데 학식이 없는 로조는 매일 나무하고 밥을 지으며 오랫동안 고행을 하였다. 1898년 로조의 나이 50세에 이르렀을 때 유조는 이미 노쇠하여 누구에게 도통(道統)을 이어주어야 할지 고심하다가 천단(天壇) 앞에 의식을 갖추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노모(老中)께서 훈시하시길 “대현(大賢)은 바로 눈앞에 있다.”고 하였다. 유조는 그 뜻을 모르고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만약 미륵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곡강지(曲江池) 안을 자세히 보아라. 머리에는 양털 모자를 쓰고 몸에는 속인의 옷을 걸치고 입을 열면 진실한 말을 하고 항상 인의(仁義)를 베풀고 있느니라. 눈을 뜨면 두 갈래로 갈리고 중간에 일점의 기(機)가 있으며 일월이 합하여 명감(明鑑)이 되니 사람마다 손에 들고 있다.”고 훈시하였다. 그래도 유조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다시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물으니 “때가 이르지 못해 그대에게 말하기가 어렵다.” 하므로 속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무엇을 깨달은 듯 모든 제자들에게 손을 씻고 소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불전에서 모두 두 손을 펴게 하고 누구의 손금이 합동(合同) 두 자로 되어있는가를 검사해 보았다. 그러나 어느 제자의 손금에 합동 두 자가 없었다. 유조가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즈음 로조가 주방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 나와 불당으로 달려와서 “제 손에 있나 봐 주세요.” 하자 “자네가 있을 리 있겠는가?” 하고 잘 살펴보지 않았다.


    얼마 후 유조는 대중들에게 “나는 이미 늙어 도운(道運)이 쇠퇴하여 이곳을 더 이상 유지해 나갈 수 없으니 각자 천명(天命)을 받들어 갈 길을 찾아 해산하라.”고 하자 제자들은 할 수 없이 각기 짐을 챙겨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가거나 개황에 나섰다. 홀몸인 로조는 돌아갈 집이 없어 고향 산동 제령의 여동생이 생각나 그곳으로 가기로 하고 여동생의 소재를 힘겹게 수소문하여 찾아갔으나 20 여 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한 까닭에 서로 알아보지를 못하였다.


    로조가 어린 시절 어려웠던 생활과 남매가 마을 앞에서 야채를 줍던 일들을 이야기하자 비로소 남매임을 확인하였다. 이때 로조의 여동생은 이미 진씨 집에 출가하여 흥륭(興隆) ․ 흥해(興海) 두 아들이 있었고 남편은 우둔한 편이라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다시 함께 살며 수도와 전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불당을 설치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시작하였다. 도무가 날로 번창해지자 두 생질도 도무를 돕게 되었다. 그들은 큰 진선생과 작은 진선생으로 불렸다.


    광서 31년(1905년) 로조는 정식으로 계명(乩命 : 선불의 지시)에 의해 17대 조사가 되었다. 로조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민국14년(1925년) 귀공 시 수천 명의 제자가 있었고 수제자가 8명이 있었다. 귀공 후에 김공조사(金公祖師)로 봉해졌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남해고불은 백양기 미륵부처님의 좌보처불로써 대수원을 돕고 계신다. 

    남해고불은 관세음보살이시다.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 구고구난 대비보살(千手千眼 救苦救難 大悲菩薩)로 기원전 250년경 인도와 중국 사이의 흥림국 묘장왕의 셋째 공주로 태어나 귀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의 고난을 구원하려는 대비심(大悲心)을 발하여 험하고 고된 시련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며 수도 정진하여 성도하셨다.


    남해고불(南海古佛)이라는 명호는 관세음보살이 남해 보타락가산의 연대에 정좌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관세음보살은 중국 최남단인 절강성 남해 보타산에서 수행하여 부처를 이루어 아미타불로부터 대자대비 심성구고 광대영감 관세음보살(大慈大悲 尋聲救苦 廣大靈感 觀世音菩薩)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고해에 빠져 구원을 요청하는 중생들이 부르면 32상의 변화현현(變化顯現)으로 어디든지 나투시어 중생을 구원해 주신다.


    남해고불은 여자의 몸으로 최고의 도덕을 실천하신 분이다. 본디 정직 청순하여 일체 오염되지 않은 깊은 산골에 홀로 핀 아름다운 지란화 처럼 원근 간에 아름다운 향기를 표산(漂散)하듯이 왕녀로 태어나서도 부귀영화에 물들 지 않고 청정무구로 아름답게 빛을 발한 대자대비의 보살로 일체의 고액과 마장을 마쳐 복덕 지혜 원만하여 영원히 무궁하게 변화하며 삼계시방의 중생을 구제하여 주신다.


    자비에 넘치는 따뜻한 그 모습은 인류가 구극이상으로 하는 어머니이기도 하며 숭앙에 마지않는 위대한 만세의 사표이기도 하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사존 사모의 명령을 받들어 도무를 보살피는 분으로 호귀금 유몽영 장오복 서형보 제명주 동옥천 손석곤 장자충 등 여덟 분이 계셨다.


    도(道) 중의 어른(長)으로 한 스승인 노조 밑에서 수학한 사존 사모와 같은 연배의 도우이거나 혹은 사존 사모의 문하에 일찍 들어온 제자로서 도반을 돕고 도무에 힘써 협조하신 분들이다.


    ※사존 사모께서 전도하실 때 바퀴가 하나 뿐인 작은 인력거를 타고 다니셨는데 이 인력거를 도장 중의 한 분 노대인께서 이끄셨다. 한번은 겨울에 다리를 건너가다가 길이 얼어 미끄러져 머리를 다쳐 피가 흐르는데도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고, 거의 다리를 다 건널 즈음에 또 발이 얼어있는 강물에 빠졌다. 그래도 도장께서는 한마디 투정이나 불평도 하지 않고 사존 사모를 모시고 동네에 당도하여 곧바로 쌀을 씻고 밥을 지어 공양하고 차수를 끓여 차를 올린 후 사존 사모께서 진지를 다 드신 후에야 방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도장 노대인께서는 천신만고를 다 겪으며 도무를 위하여 자기를 다 희생한 것이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미륵부처님은 삼기 백양기의 주존불로서 천반(天盤)을 관장하시고 삼조(三曹:기천신선 ․ 인간 ․ 유명귀혼)보도(普渡)의 총 책임을 맡으셨다.

    미(彌)는 시간, 륵(勒)은 공간을 의미하여 도맥(道脈)을 이으신 분이기에 조사(祖師)의 칭호가 붙는다.

    미륵은 자비(慈悲)이다


    미륵이란 명칭은 범어 마이트레야 (Maytreya)의 한역인데 자씨(慈氏) 곧 자비스런 어머니라는 말이다. 백양기의 주존불이신 미륵부처님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시기에 맞추어 누구나 귀근(歸根)할 수 있는 길을 밝혀주시기 위해 강세하셨다.


    과거 미륵불은 초발심 때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지 않음은 어질기[仁] 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고 오훈채인 파 ․ 마늘 ․ 달래 ․ 부추 ․ 무릇을 먹지 않음은 곧 청정하고 자비로운 미륵이라는 것이다.


    미륵은 간간이 인간세상에 이미 몇 번에 걸쳐 나오셨다. 단지 사람의 육안이 범태(凡胎)하여 진불(眞佛)을 알아보지 못하였을 뿐이다. 남북조 시대의 부흡(傳翕), 당나라 말기 오대(五代)시기의 포대화상(布帶和尙), 신라시대 진표율사, 13대 서조, 17대 로조 역시 미륵부처님의 화신이다. 이 가운데에서 포대화상이 미륵의 화신이었음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포대화상은 능히 중생을 계합하므로 스스로 계차(契此)라 칭했으며 몸이 다소 비대하여 외호(外號)를 장정자(長汀子) 라고도 한다.

    평소에 항상 복부를 드러내고 손에는 포대를 가지고 오른 손에 나한주(羅漢珠)를 가지고서 도처에 나타나 중생을 도화(道化)하였다. 그러나 그 때 사람들은 그를 미륵부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양정명(梁貞明) 2년 (916년) 3월 포대화상은 악림사에 다달아 그 문에 들어서서 시 한 수를 읊었다.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

                     分身千百億   천백억으로 분신하여

                     時時示詩人   시시때때로 사람에게 나타나나

                     時人自不識   그때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누나


    미륵부처님은 이 땅에 오시어 분열과 궁핍, 혼란의 오탁악세 세상을 화합, 풍족, 화락의 정토세계로 화하여 만수가 한 근본으로 돌아가 사(邪)가 제거되고 정(正)이 나타나는 행복한 세상으로 이루어 주신다.


    또한 자비가 충만하여 “선남신녀가 모든 계율을 범하고 온갖 악업을 지었더라도 성심으로 진실하게 참회하면 그 죄업을 벗고 미륵의 이름으로 성불케 하리라.”는 발원이 있으니 모든 종족 ․ 종파 ․ 지역을 초월한 전 인류의 복 밭인 것이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월혜보살의 화신으로 궁장조사와 함께 18대 자계조사이시다. 인반(人盤)을 맡은 영적수원모로서 표문에 이 분의 이름을 걸어서 구도하게 된다. 


    성은 손(孫)씨이고 이름은 소정(素貞), 휘는 혜명(慧明)이다. 청조 광서 21년(1895년) 8월 28일 산동 단현에서 탄생하셨다. 성장하여 부모가 시집가라고 권하자 “영원한 것이 아닌 여관방과 같은 추운 창문을 지키며 독신으로 앉아 있으니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寄寓客家牢守寒窓空寂寞)” 라는 시를 지어 대문에 내 걸고 이에 화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집가겠노라 하였는데 사존께서 보시고 “몸과 마음을 다해 명리를 구해 보아도 마지막에 가서는 공수래공수거가 되는 것이니 홍진세상에 애착을 갖지 말고 미망에 빠져 있는 그 곳에서 빨리 피해 나와서 우리의 근본인 노모님께 돌아가야 한다.(遠避迷途退還蓮逕返逍遙)” 라고 화답의 시를 보냄으로서 영적인 인연을 맺어 사존을 따라 전도활동을 하였다. 1930년 사존과 함께 공동 책임으로 말후일착 삼조보도 수원대사를 완수하라는 천명을 받고 비로소 불문을 크게 개방하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가 구도하게 되었다.

     

    1947년 8월 15일 궁장조사 귀공 후 도무를 이어받고 1947년 말과 1950년 초기에 홍콩에 체류하고 계셨다. 중국대륙이 공산당에 완전히 함락될 무렵 대륙으로 돌아가 도친들과 생사를 같이 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도장이 간곡히 만류하여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유사이 장군의 주선으로 대만에 오시게 되었다.

     

    대만에서의 전도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관고 등 온갖 고마 속에서도 근검절약의 표간을 세워 삼조보도 삼기수원을 멈추지 않으셨다. 한번은 사모님께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시는 것을 본 시봉하는 제자가 수도꼭지 사용법을 모르시는 줄 알고 물이 많이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틀어 드렸는데 “내가 무슨 덕이 있고 능력이 있어 풍족을 누리겠는가.” 하셨다. 물 한 방울도 아끼며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신 덕행에 감동한 제자들은 돈독한 수도정신과 위도정신으로 도무를 펴 나갔다. 


    자비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밤이면 천단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노모님께 삼기말겁의 중생제도를 위한 자비기도를 올리며 간구하였다. 원불자 제도를 위한 심려로 성체는 지칠 대로 지쳐 병고로 고생하시다 81세 일기로 민국 64년(1975년) 2월 23일 귀공 하셨다. 


    사모의 도호는 중화성모(中華聖母)이며 모친노대인 ․ 성모노대인 ․ 자모대인 ․ 월혜보살 ․ 성모님․ 자계조사로 부른다. 


  • Question(질문)

    Answer(답변)

    송나라 말엽의 제공활불의 화신으로 18대 궁장조사(弓長祖師)이시다. 백양2조 이시고 도반(道盤)을 맡으셨다. 청광서 13년 (1887년) 7월 19일에 산동 제령성 남향썅유점(南鄕双劉店)에서 탄생하셨는데 이날 황하 이북의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비추었고, 흐린 황하의 물이 갑자기 강 밑바닥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성은 장(張) 씨이고 이름은 규생(奎生) 또는 괴생(魁生)이고 자는 광벽(光壁)이다. 아버지는 옥새(玉璽)이고 어머니는 교(喬)씨로 집안 살림이 넉넉하였다. 22세 때 제령을 떠나 상해로 가서 군관생활을 하였는데 부친이 별세하자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업을 관리하던 중 27세 때 공맹일관지도(孔孟一貫之道)를 전하는 경전인(耿前人)을 만나 구도한 후 곧장 전도에 동분서주 하였다. 


    17대 로중일(路中一)조사를 뵙고 로조와 함께 곳곳으로 다니며 도를 폈다. 로조의 수 천 명의 제자 중 수제자가 8명 이었는데 그 가운데 사존이 가장 어렸다. 하루는 로조께서 시험을 했는데 제자들을 다 모아놓고 “나를 따라 수도하느라 먹을 것도 못 먹고 고생하였으니 고기도 요리하여 잔치를 열어 실컷 배부르게 먹어라.” 하였다. 오로지 사존 혼자만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 그 자리를 피하여 그 시험에 통과 하였다. 


    성모님의 기우객가뇌수한창공적막(寄寓客家牢守寒窓空寂寞)이란 시에 원피미도퇴환연경반소요(遠避迷途退還蓮逕返逍遙)로 화답하여 만난 18대 자계조사와 함께 1930년 공동책임으로 말후일착 삼조보도 수원대사를 완수하라는 천명을 받아 18대 조사로 승계하였다. 성모님과 함께 제남으로 건너가 개황에 성공하고, 다음으로 천진을 개황하여 천진도덕단을 설단하였으며, 순양로(純陽爐) ․ 자양로(紫陽爐) 등을 설립하여 인재를 교육하므로서 도무가 발전하였다. 다음으로 상해를 개황하고 북경, 남경, 대만, 한국 등지로 확대 발전 되었다. 


    1939년 예식을 행하는 방식이 통일되지 않고 집례의 구령에 사용되는 말이 너무 어려워 잠정불규를 제정하여 합동인(合同印)의 포법을 통일토록하고 원래 집전에서 사용하던 구령 중 승(升)과 부(俯)를 작읍(作揖), 궤(跪)로 고수(叩首) 및 기(起)로 고치고 여러 종류의 행위 예절도 규정하였다. 


    1947년 8월 중추에 사천성도의 왕도심 화원 별장에서 귀공 하셨는데 정계원로인 거정의 협조아래 특별기편으로 상해 홍교비행장까지 운구한 다음 다시 호항철도의 기차를 이용하여 항주 서호 호반의 영은사 부근에 안장되었다. 제공활불은 영은사에 주재할 때 영구비래(靈柩飛來)라는 편액을 써 놓았는데 사존의 영구(靈柩)를 비행기로 운구한 점은 의미가 깊다.

     

    사존의 도호는 천연고불(天然古佛)이며 은사대인 ․ 사존대인 ․ 활불사존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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