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당예절

불당예절

사모(師母)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2회 작성일 23.09.24

본문

월혜보살의 화신으로 궁장조사와 함께 18대 자계조사이시다. 인반(人盤)을 맡은 영적수원모로서 표문에 이 분의 이름을 걸어서 구도하게 된다. 


성은 손(孫)씨이고 이름은 소정(素貞), 휘는 혜명(慧明)이다. 청조 광서 21년(1895년) 8월 28일 산동 단현에서 탄생하셨다. 성장하여 부모가 시집가라고 권하자 “영원한 것이 아닌 여관방과 같은 추운 창문을 지키며 독신으로 앉아 있으니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寄寓客家牢守寒窓空寂寞)” 라는 시를 지어 대문에 내 걸고 이에 화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집가겠노라 하였는데 사존께서 보시고 “몸과 마음을 다해 명리를 구해 보아도 마지막에 가서는 공수래공수거가 되는 것이니 홍진세상에 애착을 갖지 말고 미망에 빠져 있는 그 곳에서 빨리 피해 나와서 우리의 근본인 노모님께 돌아가야 한다.(遠避迷途退還蓮逕返逍遙)” 라고 화답의 시를 보냄으로서 영적인 인연을 맺어 사존을 따라 전도활동을 하였다. 1930년 사존과 함께 공동 책임으로 말후일착 삼조보도 수원대사를 완수하라는 천명을 받고 비로소 불문을 크게 개방하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가 구도하게 되었다.

 

1947년 8월 15일 궁장조사 귀공 후 도무를 이어받고 1947년 말과 1950년 초기에 홍콩에 체류하고 계셨다. 중국대륙이 공산당에 완전히 함락될 무렵 대륙으로 돌아가 도친들과 생사를 같이 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도장이 간곡히 만류하여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유사이 장군의 주선으로 대만에 오시게 되었다.

 

대만에서의 전도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관고 등 온갖 고마 속에서도 근검절약의 표간을 세워 삼조보도 삼기수원을 멈추지 않으셨다. 한번은 사모님께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시는 것을 본 시봉하는 제자가 수도꼭지 사용법을 모르시는 줄 알고 물이 많이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틀어 드렸는데 “내가 무슨 덕이 있고 능력이 있어 풍족을 누리겠는가.” 하셨다. 물 한 방울도 아끼며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신 덕행에 감동한 제자들은 돈독한 수도정신과 위도정신으로 도무를 펴 나갔다. 


자비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밤이면 천단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노모님께 삼기말겁의 중생제도를 위한 자비기도를 올리며 간구하였다. 원불자 제도를 위한 심려로 성체는 지칠 대로 지쳐 병고로 고생하시다 81세 일기로 민국 64년(1975년) 2월 23일 귀공 하셨다. 


사모의 도호는 중화성모(中華聖母)이며 모친노대인 ․ 성모노대인 ․ 자모대인 ․ 월혜보살 ․ 성모님․ 자계조사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