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고불은 사존의 성호(聖號)로서 민국 36년(1947년) 8월 15일 귀공하신 후 노모님께서 봉하신 것이다. 성은 장(張) 씨이고 이름은 규생(奎生)이며 또는 괴생(魁生)이라고도 한다. 산동 제령(山東 濟寧)성 밖의 남향쌍유점(南鄕双劉店) 사람으로 청 광서 13년(1887년) 7월 19일에 출생하여 민국 36년(1947년) 중추에 59세로 귀공 성도하셨다. 아버지 이름은 옥새(玉璽)이고 어머니는 교(喬) 씨이다. 자는 광벽(光璧)이고 도호(道號)는 천연자(天然子)이며 제공활불 화신으로 사모와 함께 천도의 64대 조사이고 동방후 18대 궁장조사이시다. 천연고불 ․ 궁장조사 ․ 사존 ․ 활불사존 ․ 은사대인 ․ 제공활불 등으로 불려진다.
민국 4년(1915년) 27세 때 경(耿) 선생을 만나 구도하고 백 사람을 인보 해야 아버지를 초발 할 수 있다고 하여 인보에 주력하였는데 백 명을 채우지 못하고 64명만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를 안 경선생이 17대 로조에게 간곡히 자비를 빌어 강필지시로 64명 인보로서 초발을 허락받게 되었다.
사존은 경선생이 귀공할 때까지 로조를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경선생이 귀공하자 로조께서 궁장조사의 이름을 전해 듣고 사람을 보내 찾았는데 그때부터 로조를 따라 수도하게 되었다. 17대 로조 김공조사의 수천명의 제자 중 가장 경력이 짧고 후학이 적었으나 지혜가 밝고 진실하여 로조의 뒤를 이어 18대 조사로 천명을 이어받았다. 1925년 2월 2일 로조께서 귀공하시자 그 자리를 우선 로조의 여동생이 6년 동안 대리천명을 받아가지고 있다가 1930년 궁장조사와 자계조사가 공동으로 천명을 이어받아 정식으로 조사가 되었다. 대리천명을 6년간 맡아있던 로조의 여동생이 진씨 집에 출가하여 흥륭과 흥해 두 아들을 낳았는데 두 아들이 도무를 열심히 도왔으며 천연고불의 여동생이 로조의 생질인 진흥륭의 처가 되었으니 로조와 천연고불은 사돈관계가 된다.
사존께서는 제남개황에 성공하고 다시 천진으로 발전하였는데 천진에서의 개황의 시작은 한 여관에 들어 매일 불상을 들고 길거리로 나가 행인들의 호기심을 끌려고 했으나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여관주인의 주목을 받아 여관주인이 먼저 구도한 후 여관 맞은편에 있는 무술단체인 도덕무학사 사장 손석곤(孫錫堃)을 소개해 주어 도덕무학사 전체 사원이 구도하게 되어 도덕무학사를 일관도 도량(道場)으로 내놓아 천진도덕단의 시초가 되었다. 천진도무가 대성황을 이루자 이어 상해 북경 남경 등으로 개황이 번져갔다. 더욱 대외적으로 확산되어 1947년 무렵 한국 대만 홍콩 일본 등지로 개황에 나섰다. 한국은 천진도덕단의 맥을 이어 곤수곡인 김복당 노전현대인께서 천연고불의 천명을 받들어 조국개황 나오시어 본 협회인 국제도덕협회(일관도)를 설단 하셨다.
곤수곡인께서는 계천입극 백양궁장이조천연고불(繼天立極 白陽弓長二祖天然古佛) ․ 대덕돈화 백양궁장이조천연고불(大德敦化 白陽弓長二祖天然古佛)의 불위를 친필로 써서 전국 각 지부법단마다 천단에 모시고 헌향예배하며 존사중도를 실천하셨다.